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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수원에 있는 대학생 딸들이 한 달만에 집에 다녀간다고 하여 부모로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사전에 먹고 싶은 메뉴도 주문받았다. 마치 한달 동안 함께 식사하지 못한 아쉬움을 한 번에 해결하듯 그렇게 준비했고, 외식 계획도 잡았다. 혼밥하기 힘든 메뉴 위주로... 한우 스테이크, 냉면, 김치전, 모둠회, 케이크, 칼국수, 치킨, 라면, 탕수육, 야끼우동, 짬뽕, 베이글, 소금빵...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마다 의외로 딸들은 힘들어 했다. 말 그대로 식고문이었다. 음식맛을 모르고 먹는 것 같았다. 배고플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에 한정된 메뉴를 넘어서려는 부모의 애씀은 아이들이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했다. 2박 3일 동안 결핍의 축복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비워야 진정한 맛을 더 느끼게 되는 역설.... 분명 아이들을 위한 준비와 베풂이었고, 동기도 의심할 여지 없이 선한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 부모의 후회를 덜려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그런 마음이 사교육 심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핍으로 누리는 즐거움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부모 사랑의 부작용, 그 단면일 수도... 자기주도학습은 실패와 좌절을 기반으로 한다. 초라한 시작이어야 지속적인 습관이 형성된다. 넘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채 자발성이 희생된 일상에서 힘겨워한다. 거기에 익숙한 아이들도 뿌리를 내리는 내실있는 실력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성과를 확인받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그에 따른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양적팽창과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면 즐거운 배움의 성장을 음미할 여유없이 매순간 불안감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마땅히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결핍을 인정하면서 생기는 절실함이나 자발적인 채움의 의욕은 공급과잉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것이다. 아내는 서울로 올라가려는 아이들의 가방에 반찬과 먹을 거리들을 싸주었다. 더 넣어주고 싶은 것을 고민하여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확실한 건 비운만큼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우지 않고 더 넣으려는 과잉은 역시 절실함과 자발성을 희생시킨다. 때로 부모와 교사는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배고픔과 관계없이 시간을 맞춰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더 좋은 메뉴를 고민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배고플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다음 번 딸들이 내려올 때는 배고픔을 감당하도록 할 작정이다. 그러나 그 다짐도 딸들을 마주하면 무너져내릴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딸들의 여유있는 즐거움과 더 큰 행복을 위해 부모의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으려 애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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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관련된 미스터리 솔루션.. 그 자체로 완결된 교육적 내용이므로 나의 생각은 더하지 않고 책의 내용만 발췌하려 한다. <7장 인생의 무기가 되는 미스터리 솔루션> 교육의 비결은 학생을 존중하는 데 있다. 학생이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할 사람은 교사가 아니다. 오로지 학생만이 그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다. - 랄프 월도 에머슨, <교육>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교사가 수업을 진행한다. 그들이 자료를 분석하고 지식을 구축한다. 반면 하크니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 주어진 정보를 그냥 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뭘 외워야 하는지부터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하크니스 교수법 연수를 맡은 엑스터 인문학 협회 소속인 엑스터의 역사교사 메그 폴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하크니스 교수법이란 기본적으로 학생 중심이고 학생이 주도하는 토론법이라고 보면 돼요.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어쨌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학생들이 주도하고, 선생님은 옆에서 자극을 주거나, 돕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체크만 합니다.” 수동적인 수업에서 하크니스 교수법으로 전환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수업이 정답을 맞추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하크니스 교수법은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개방형 질문을 강조한다. 학생들은 정보가 아니라 문제를 전달받는다. 서로 반론을 제기하고 토론하며 미스터리를 스스로 파헤친다. 이 같은 혁신적인 교수법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세기에 랠프 월도 에머슨은 교육을 주제로 쓴 글에서 ‘영혼을 파괴할 정도로 답답한’ 미국의 학교 교육을 여러 번 개탄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 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절망의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학생의 천재성과 타고난 미지의 가능성을 희생시키며 깔끔하고 안전한 획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지금 학교의 행태다.” 에머슨은 학생에게 강압적 규칙 대신 독립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독학할 때 학습 효과가 가장 높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때론 장난스럽게, 때론 진지하게, 나무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서로 어울리고 대화를 나눌 때 모두에게 큰 기쁨이 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교사는 이런 ‘젊음의 에너지’를 훈계하고 억누를 게 아니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에머슨이 주장하는 바였다.
“두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그래프가 있다고 생각해봐요. 한쪽 선은 위험부담을, 다른 쪽 선은 모호성을 표시하죠. 그러니까 여기 이쪽은,” 그녀는 좌측 아래의 사분면을 가리켰다. “위험부담도 낮고 모호성도 낮죠. 아이들에게 공식을 알려주고 닥치는 대로 문제만 풀게 하는 수학 수업이에요. 교사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모호성도 낮고 위험부담도 낮아요. 머릿속에 비현실적인 모범답안을 정해놓고 아이들을 그쪽으로 몰고 가죠.” 로런은 이번에는 상상 속 그래프의 우측 위를 건드렸다. “우리의 목표 지점은 여기에요. 위험부담도 높고 모호성도 높은 곳. 우리에게 엄정함의 정의는 이거예요. 학생들에게 어렵고 복잡한 정보를 주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찾고, 모험과 실수를 통해 배워나갈 거라고 믿는 거요.” 이쯤 되면 이 학교의 커리큘럼이 자존감이나 발표 같은 소프트 스킬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로런은 노블 아카데미가 다른 공립학교와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를 받을 거라는 걸 알았다. 표준화된 시험 점수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 게임에 참여해야 해요. 그래야 대학교에 원서라도 낼 수 있으니까요. 그 점수가 있어야 가능성으로 넘쳐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시험 맞춤 교육을 하며 가장 그럴싸한 정답을 학생들에게 반복 주입하는 식으로 표준화된 시험에 대처한다. 학생들은 오지선다형 시험을 연습하고 빡빡한 커리큘럼을 따른다. 이처럼 빤한 시험을 치르는데 뭐 하러 모호성에 연연할까. 호기심은 감당할 여유가 되지 않는 사치가 아닐까. 하지만 노블 아카데미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그들의 커리큘럼은 시험 맞춤은커녕 정반대에 가깝지만, 시카고의 모든 공립학교를 통틀어 점수가 가장 크게 올랐다. 9학년과 11학년은 PSAT와 SAT 점수 기준으로 ‘학생 성장’ 면에서 각각 98퍼센트와 97퍼센트를 기록했다. 시카고의 비평준화 고교 중에서도 ACT 점수는 최상위권이고 대학 진학률도 91퍼센트가 넘는다. 이처럼 놀라운 발전을 보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로런은 미스터리의 효과를 이유로 든다.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가르친다면, 정답을 모르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가르친다면 시험에 필요한 결정적인 스킬을 알려주는 것과 똑같아요. 시험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문제를 접하면 아이들은 대개 겁에 질려서 얼어버리거든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모호함에 익숙하죠. 오히려 남들보다 적극적으로, 살짝 신나는 마음으로 그 문제부터 해결해보려고 달려들 거예요.” 우리에게도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모호성과 불확실성은 대입 시험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피할 수 없는 요소기 때문이다. “보통 고위 직업군의 일을 하면 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상황들을 계속 직면하게 되죠. 규정집 같은 건 없어요. 낯설고 때로는 살짝 겁이 나기도 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알아내야 하죠.” 노블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에게 모르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 모호한 주제를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해 모호함이 무섭거나 피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갖가지 대화를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를 계속 몰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미스터리다. 로런은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항상 앎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길 바라요. 아이들에게 스스로 발을 내디뎌 자신이 모르는 곳으로 건너갈 용기를 길러줄 수 있다면 시험 문제보다 훨씬 귀한 걸 가르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상황이 어떻든, 무슨 일을 하든 점점 발전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거니까요.”
자기 설명 효과 –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중간에 틀리더라도 학생들에게 스스로 정답과 설명을 도출하게 할 때 이런 효과가 발생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문제를 제시할 뿐 아니라 푸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는 ‘강사 대본형’교수법이다) 자기 설명이 효과가 좋은 이유는 미스터리를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학생들은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뼈저리게 실감하는 반면, 능수능란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자기 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 설명을 하다보면 대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갖게 된 더 넓은 시야를 통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아리송한 개념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로써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의미를 가르쳐주는 건 정답이 아닌 질문이다. 호기심은 권태의 해독제다. |
재수해서 명문 대학에 진학한 제자의 어머님과 대화를 하다가 의대 증원을 놓고 반수를 권할까 고민한다고 하셔서 현실을 말씀드리면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답답해하거나 궁금해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도였다. 댓글이 달렸다. 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공교육 교사인 내가 이런 시기에 굳이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답변을 달았다. 불편한 마음 드려서 죄송합니다 공교육 교사로서 저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책이나 어떤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민감한 이슈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겠구나... 그렇게 보는 분들도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고심 끝에 글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더라도 앞서 언급한 학부모님처럼 정보가 필요한 분들이 선별적으로 도움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물론 고3 담임을 하고 있었다면 더 빨리 준비해서 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주었을 것이다. 당장 입시 판도에 영향을 주는 상황일 것이니까. 물론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의대에 진학한 많은 제자들도 떠올랐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일일이 연락을 해주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든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적으로 언급하여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그래서 늘 조심한다. 사실 나의 의견을 학생들이 굳이 궁금해하지도 않으니 굳이 먼저 얘기할 필요도 없다. 교사인 내게 블로그도 중립의무의 영역이다. 나의 의도와 노력으로 결과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겠지만 글의 소재는 물론, 글의 내용 중에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민감하게 다가올 내용은 없는지 늘 살피고 고민한다. 나의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나, 언급하는 대상을 특정하는 일이 없도록 늘 의식한다. 때로는 글을 완성하고도 공개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인플루언서가 아닌 것치고는 과할 정도로. 어쨌거나 이론적으로는 누구라도 볼 수 있는 플랫폼에 올려놓는 것이니, 교사의 중립성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라도 사소한 불편함이라도 끼쳐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반 학생들에 매일 신문기사나 사설 읽고 댓글 달기 활동을 할 때에도 민감한 사안은 피했다. 혹 토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양쪽 입장을 모두 보여줘서 각자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했다. 사실 난 비겁할 정도로 순응적이다. 교사되기 전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과 같이 침묵하지 않는 이상적인 교사를 꿈꿨지만 교사가 되자마자 한계를 바로 인정해버렸다. 소시민적인 교사인 나는 그렇게 내게 허락된 영역과 영향력의 범위에 머물며 그렇게 살아왔다. 사교육을 뒤집어엎기보다 공존과 협력을 유지했던 것 같다. 딸들은 학원을 보내지 않으며 소신을 지켰지만 학교 학생들에게는 내 영어 멘토링과 양다리를 걸치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물론 학원은 학원을 다니지 않기 위해서, 자립하기 위해서 다녀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그저 나의 소심한 도전이나 도발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자립은 내 수업과 코칭 프로그램의 목표이기도 하다. 둘째 딸 정시 원서 쓸 때 진학사와 고속성장 프로그램을 활용했지만, 내가 사설 컨설턴트 같은 역할을 했다. 고3 담임으로 원서 쓸 때도 사설업체의 자료도 활용했지만 학교에서 상담으로도 충분하도록 애썼다. 수능 대비에서 입시 컨설팅, 학습 컨설팅 영역까지 사교육업체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공교육 교사로서 전문성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필요한 분들께 가닿기를 소망했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입시 성과를 부인하고 더 큰 꿈을 품으며 재수를 결심한 자녀의 어머니와 무상으로 상담을 했다. (무상을 강조하는 것은 공교육 교사의 겸직금지를 어기지 않았다는 걸 확실히 하기 위함) 상담 후 감동적인 답변을 받았다. 부모로서도 너무 힘들어서 아들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 마음을 보듬어 주기로 했다고. 부모로서도 큰 힘과 위로를 얻었다고. 감사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다면 금전적인 보상 이상의 감사다. 나의 블로그 활동도 관종의 몸부림일 수도 있고, 올해부터 광고까지 달아서 겸직허가까지 받고 얼마씩 수입(하루에 보통 몇 십 원, 한 번씩 몇 백원, 드물게 어쩌다 천 원 단위로)을 올리고 있어 나의 순수한 의도를 온전히 주장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눔의 본질은 변함없다고 믿고 싶다. 그런 내게 그 댓글은 중립과 배려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위험 신호였던 것일까? 의대증원이 입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블로그 글은 당장이라도 내려야 할까? 앞으로 어떤 선까지 글을 쓰고, 공개해야 하는 것인가?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한 고민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
둘째 딸의 수능은 끝났지만, 수능 후 계속되는 아픔이 고통의 터널처럼 계속되었었다. 딸도 블로그를 한다. 인스타의 글 버전 같은 느낌이다. 일상을 기록한 글에서는 모자이크 없는 사진, 실명으로 소개하는 친구들 이야기 등 개인정보가 즐비하다. 그래서 일상은 서로이웃 공개로 설정한 것 같다. 어제 딸의 블로그 글을 보았다. 흡사 일기장과 같은 그 글을 어떻게 보았냐고? 그전에 딸이 블로그를 야심 차게 오픈하고 내게 서로이웃을 걸었다. 어제 최근의 심경을 정리한 글을 올리고는, 마침 한 달 만에 언니와 함께 대구 집에 내려와 있던 딸이 내게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 달아 달라고 내게 대놓고 요청했다. 댓글이 안 올라온다고 하면서.. 내가 글 올린지 얼마나 되었냐고 하니까, 한 시간 되었다고 했다. 귀여웠다. 나도 "공감"과 댓글에 그렇게 신경 쓰고 있으면서, 딸에게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너만의 이야기를 그냥 올리라고, 나도 넘어서지 못한 평정심을 강요하듯 꼰대 같은 잔소리를 해주었다. 그리고 딸의 블로그 글을 보았다. 한 달간의 대학생활.. 자주 전화로 일상을 알려주고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사진과 글로 접하니 더 생생했고, 딸의 숨겨져 있던 생각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대학생활의 단면> 블로그에 학교생활, 자신이 머무는 공간과, 자신이 선택한 교양수업의 가슴 뛰는 내용들의 단면들이 사진과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딸은 친구들과 얘기하듯 편하게 글을 썼고, 한 번씩 외계어 같은 말도 있었다. "샌애긔룩"... 이게 어느 나라 말인가? ㅋㅋ "새내기룩"을 귀엽게 쓴 거라는 걸 사진을 보고 겨우 추론했다ㅋㅋ 그중 손을 번쩍 들어 위에서 찍는 새로운 셀카기법의 특이한 사진을 도촬하듯 한 장만 몰래 가져왔다. <학교 도서관> 학교 도서관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한동안 매일 갔더니 "도서관에 꿀 발라 놨냐, 또서관" 등의 소리를 들었다고ㅋㅋ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도 기뻤지만, 도서관과 친해져서 너무 기뻤다. 직접 만남, 간접 만남... 그 다양한 만남 속에서 딸은 진짜 공부를 하고 삶을 배워가며 성장할 것이니까... "또서관"이라는 친구의 표현이 재치 있고 너무 재미있었다ㅋㅋ 나도 대학교 1학년 때 거의 도서관에 살았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비사교적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심함과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대 합격할 성적으로 경북대에 다니게 된 좌절감으로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책을 마음껏 빌려 읽는 것이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최고의 의미 있는 활동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공휴일이 다가오면 과 동기들이 도서관 문 닫는데 어디 가냐고 걱정을 해주곤 했다. 이유야 어떻든 딸은 순수히 책 읽는 것을 너무 사랑했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내게 고백하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아빠의 반강요로 시작된 독서였지만, 지금은 자발적으로 책을 읽고 있으니 너무 기뻤다. <기숙사 생활> 이제는 거의 딸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숙사에서의 생활도 담겨 있었다. 한 달 만에 집에 와서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지만... 곧 언니처럼 반대 느낌이 들 때가 올 것 같다. 그게 독립의 과정인 것이겠지. 얼마 전 언니랑 톡하면서 남겼던 메시지를 언니가 캡쳐해서 "얘 제정신 아닌 것 같은데"하면서 가족톡에 올렸었다ㅠㅠ 룸메랑 짱친 먹은 행복한 컷들도 담겨 있었다. 룸메에게 얻어먹은 사진을 올리며... "룸메에게 얻어먹은 빙산의 일각들.. 이 아이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또 제 것을 아낌없이 받아 갑니다" ㅋㅋㅋ 정말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다. 서로의 애착 인형까지도 각자 외출 중에 같은 침대에 함께 재워서 애착 인형끼리도 짱친 사이가 된 듯. (파란색 푸우는 딸이 태어나기 전 학생에게 선물 받아서 딸보다 나이가 많은 딸의 애착인형이다. 푸우 없이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해서 중간에 보내주었다) 룸메와는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아침형 아닌, 밤형 두 명이 모여서, 처음에는 아침 8시에 천 원 학식에 도전해서 성공했다가... 지금은 둘 다 잠을 선택했다고.. 수업시간이 다 달라서 서로 자고 있을 때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조명 없이 은은한 커튼 젖힌 자연광에 의지하면서 화장을 하고 준비를 한다는 얘기를 하길래.. 또 꼰대 모드 발동... 그냥 아침 6시나 7시에 일정한 시간이 일어나서 함께 아침을 맞고 수업은 시간 맞춰 나가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그 얘기를 듣자마자 딸은 "엄마.. 아빠가 이상한 소리 해!!!" 이랬다. ㅋㅋㅋ 우리 가족 중 유일한 아침형 인간인 나는.. 좀 이상한 사람 맞다.ㅋㅋㅋ <소중한 인연, 소중한 만남> 대학선배이자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와 수업 같이 들으면서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컷들도 많아서 좋았다. 모두 소중한 인연, 소중한 만남일 것이니... 그 외에도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함께 한강변에서 이런 멋진 만남도... 딸에게 물었다. 세 명이 한강을 갔는데 누가 사진을 찍어 준 거냐고? 그러니까 옆에 한강 나들이 나온 초면의 비슷한 또래 여학생들을 먼저 찍어주고 받은 거라고 했다. <대학 생활의 느낌 정리> 그리고 수업 때 외국인 교수님 말씀을 적어 놓은 메모장
그리고 마음을 울렸던 에필로그
<딸의 글을 본 나의 느낌> 그렇게 한 달간의 딸의 생활에 초대를 받아 그 순간들을 함께 하고, 딸의 글을 보면서 행복하기도 했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딸은 이렇게 혼자서 잘 이겨내고 삶의 의미를 찾아 애쓰고 있었다.ㅠㅠ 특히 "수능엔 미련이 없어요. 결과에 미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미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만 이 대학에서 열심히 저만의 길을 찾아내겠습니다"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어떤 마음고생을 하며 어떤 고통을 견딘 후에 여기까지 왔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봤으니까... 이 짧은 문장에 이런 마음을 담아내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이겨냈는지 아니까... 그 문장 뒤에 숨어 있는 그 삶의 무게와 길고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도 함께 보였지만...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쓴 이 글이 치유의 문장인 것 같아서, 아직 아물지 않았던 아빠로서의 내 마음도 함께 치유하는 것 같아서 그저 감사했다. 그래서 딸에게 확인받지 않고도 난 수능 후에 오랫동안 겪었던 긴 아픔에 완치 판정을 선언하기로 했다. <댓글로 이어진 소통> 그리고 딸의 블로그에 바로 댓글을 달았다. 딸의 답글 이 글을 본 딸 친구의 댓글 딸의 답글 닮았다는 말을 거부하지 않고 기분 좋은 일이라는 한 딸의 답글에 한 번 더 감동ㅠㅠ |
원어민쌤 수업시간 수업 진행 막간을 이용해 학생이 그려준 내 초상화...얼굴 옆 손가락은 수업시간에 들고 다니는 노란색 손가락 지시봉ㅋㅋ 순간 수업시간에 딴짓한다고 야단쳐야 할지 망설였다. 사심 없이 어떤 상황에도 일관되게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걸 융통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기분 좋았다... 젊었을 때도 저렇게 잘 생겨본 적이 없었는데ㅋㅋㅋ 아래 다른 반 학생들의 그림... 배경까지 러블리로 채웠다. 교정을 거니는 내 모습을 후배선생님이 허락도 없이ㅋㅋㅋ 찍어서 작년 단톡방에 올렸다. "멋진 3학년부장님!"이라는 멘트와 함께... 그 멘트를 믿고 싶어졌다. 나도 멋지고 싶다ㅋㅋ 칭찬인지 모를 사진에 대한 댓글 "300메다 떨어져서 봐도 청부장님" ㅋㅋㅋ 연분홍색 옷, 혹은 뒷모습의 쓸쓸함 때문이었을까... 같은 날 영어멘토링에 진심인 학생 세 명을 불러서 교무실에서 청블리코스북을 선물로 주었다. 책에 사인해 줄까 물으니 의외로 너무 좋아하길래... 사인해 주는 광경을 목격한 주변 쌤들, 흡사 팬싸인회? 옆자리 쌤이 포즈를 취해보라고 사진까지 찍는데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싸인한 면을 펼쳐들어 센스 무엇이냐는 찬사를 들었다. 한바탕 소란 후 앞 선생님이 행복해하는 내 표정을 살피시며, 3학년부장 해보니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들죠? 라고 물으셔서 순간 "넵!"이라고 외칠 뻔했다. 학년부장 아니라도 영어멘토링은 계속되는 거였지만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더 개입할 수 있는 자격 같은 거였다면 진즉에 자원했을지도. 한 쌤은 금방 찍은 사진이 블로그에 곧 올라가겠다고 하셔서... 초상권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사이에 행복해하는 내 사진을 공개하고 싶어 학생 세 명의 얼굴과 싸인할 때 적어준 학생들 이름, 주변의 개인정보를 모자이크 처리하니 사진에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사진 대신 학생들에게 선물한 청블리코스북 표지. 캐릭터는 20년째 변함이 없는데 캐릭터처럼 손을 가리고 웃는 대신 너무 마음껏 웃고 있는 사진 속 내 모습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낯설음 같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