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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중학교 1학년 교실에 중간고사 시험감독을 들어갔다. 중1 여학생 한 명이 시험에 몰두하다가 연필을 떨어뜨렸다. 자리 이탈은 부정행위 오해 소지가 있어서 학생들은 눈앞에 두고도 함부로 주워들 수가 없다. 바로 학생에게 다가가서 연필을 주워주었다. 학생은 내가 다가가는 순간부터 민망함에 소리 없이 웃으며 부끄러워했다. 난 학생에게 미소 지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데 또 펜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싸인펜을 떨어뜨렸는데, 아까 그 학생이었다. 떨어지는 순간부터 당황함을 쑥스러운 웃음으로 숨기고 있었다. 바로 다가가서... "왜 자꾸 떨어뜨리고 그러니? 조심하지 않고, 자꾸 이럴래?" 라고 하지 않고... 나도 웃으며 괜찮다는 아까의 표정과 말을 한 번 더 반복해 주었다. 시험이 종료되고 답지를 걷고 나니 이 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무슨 과목 선생님이냐고 내게 물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면서 맞춰보라고 했다. 한두 번 기회만 주려고 했는데 영어쌤이라고 한 번에 정답을 얘기해서 엄지척해주었다. (내신시험 시 각 반의 절반 정도 학생들이 학년을 교차해서 이동한다. 양옆 줄에 다른 학년 학생들이 자리하게 되므로 부정행위 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 시험 시작 전, 1학년 교실로 이동해 있던 3학년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전날 영어시험만큼 수학시험도 잘 치라고 응원을 했다. 영어시험 망쳤는데 그게 응원이 맞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걸 기억하고 맞혔다면 주의력이 깊은 학생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학생은 수학문제를 몰입해서 풀고 있었다. 3학년 영어쌤이라고 좀 더 자세히 얘기하니까, "3학년이 되어 뵐게요"라고 얘기해서 놀랐다. 적어도 내게는 중3이 되어 선생님으로 만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아직 초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하는 중학교 1학년 5월 초에 내 비주얼을 제대로 알아봤을 리는 없고ㅋㅋ 아마도 진짜 실수해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말과 표정으로 전달되는 친절함에 반응했을 것이다. 학생은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대답 같은 반응을 기대하는 듯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야 말았다. 이 학생은 반드시 중3이 되겠지만, 나는 올해 이 학교 만기라서, 내년에 학교를 옮겨야 하니 약속을 지키려면 2년을 내리 유예해야 하니까.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라면 부디 이 학생이 이 일을 까맣게 잊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해맑은 표정의 아이에게 쌤이 올해 이 학교 마지막이라서 너 중3 때는 학교에 없을 거라는 말을 구구절절이 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만 기분 좋고 자연스럽게 잊히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혼자서 과몰입했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실수에 더 관대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소한 실수에도 아버지의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던 나는, 완벽할 수 없다는 현실을 완벽한 척하는 위선으로 포장하며 늘 지치고 힘들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에도 올백 맞았을 때에만 나를 업어주셨다. 중간고사 아침 등굣길에 중학생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최대 87점까지 맞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87점을 맞으면 부모님이 만족하시지 않을 거야." 슬펐다. 시험성적으로 부모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물론 불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효도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성적 안 나와도 가슴 아픈데 불효자까지 되는 건 너무 가혹하다. 게다가 그건 공부의 본질적인 이유도 되지 못한다. 부모님의 압박이 없어도 부모의 만족과 안타까운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면 아이들은 과정보다 결과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즐거운 배움의 성장은 그들에게 사치가 된다. 시간을 단축하는 편법과 뿌리보다 꽃꽂이 같은 애씀이 본질적인 즐거움을 희생시킨다. 속상한 것은 아이의 몫이어야 하며, 실패도 오롯이 아이들이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점수와 노력의 과정은 이미 부모의 것은 아닌 것이며, 부모는 그저 아이들의 직접적인 책임과 감정에 대해 간접적으로 공감하며 함께해 주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실수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곳이 너의 끝이 아니며, 굴곡을 통해서도 우상향할 거라는 큰 그림의 확신을 믿음으로 전해주면서도 생각보다 더 오랜 기다림의 각오도 해야 한다. 방임과는 다르지만 아이들이 실수를 통해 배우게 하려면 어느 정도는 방관자가 되어야 한다. 다정한 무관심이 필요하다. 학생과 얼떨결에 해버린 훗날의 약속은 사실 중요한 초점이 아니었다. 민망해하는 아이에게 실수해도 괜찮고, 혹 그 실수를 한 번 더 반복해도 넌 여전히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해준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아이에게 이런 포용과 존중과 인정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심어졌다면, 난 수업 아닌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교육을 실연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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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영어과 교생실습 안내
지도교사 청블리쌤 3-1반 담임
<교과지도 안내> 1. 대략적인 일정 1주차 : 전체 연수, 지도교사 수업참관(5/10 금 6교시), 금요일 7교시 보충수업도 참관가능 2주차 : 교수요목 및 지도안 작성 3주차 : 본격 수업, 지도안 제출 4주차 : 추가 수업, 대표수업, 과제 제출 마무리, 협의회
2. 교재 및 시수 교과서 독해 본문(p.52-53) 한 페이지 1차시로 총 2차시 총 9개 학반 중 2-3개 학반씩 동일한 차시 수업 (3-4반 2차시 화요일 1교시 대표수업 예정) 원어민 수업 co-teaching(통역 및 수업 보조) 각 1시간
3. 교과 대표 및 대표수업선생님 선정 – 수업배당표 파일로 작성하여 제출
4. 수업 참관 전원 참석 단, 원어민 co-teaching은 두 명씩 교대로 시간표 짜기(한 명은 수업보조, 한 명은 참관)
5. 지도안은 수업 이틀 전까지 지도교사에게 교수요목 피드백 받은 후 수업 시 지도안 제출 – 지도안은 약식 아닌 정식으로
6. 수업은 현실보다 이상에 가깝게 지도해도 됨. 온라인도구 활용 등의 방법도 연구해 보기(각 교실 개인 태블릿pc 활용가능하며 지도교사가 직접 잠김 풀어줌) 단, 개인 태블릿 사용 시 꺼내는 시간과 정리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5분 이상 소요될 수 있으니 감안해야 함.
7. 교생일지는 매일 오후 4시에 제출, 다음 날 아침 8시 35분 이후에 3학년 교무실에서 찾아감
8. 실습 점수는 전체 참여 태도 및 성실도, 수행능력, 배움과 성장 정도, 과제 충실도, 수업역량과 노력, 피드백 반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함(대략 상대평가)
9. 지도교사에게 수동적으로 기대지 말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질문하며 배울 것. <과제 제출> 구글클래스룸 수업코드 : ******* 학교 아닌 개인 구글계정으로만 가입가능 구글클래스룸에서 각 과제 첨부문서에 입력하여 과제제출 구글클래스룸초대링크 ➜
* 사전설문 작성 – 5월 7일 당일 작성 * 5월 9일 동아리 활동 – 자세한 내용 구글클래스룸에서 확인(팝송 수업 10분 준비) 1. 교직관 글 두 편 읽고 <교직관> 정리하여 과제 제출 - 5월 13일 월요일까지 2. 글 두 편, 영상 한 편 본 후 <담임 제안서> 작성하여 과제 제출 - 5월 20일 월요일까지 3. 학생상담 일지 첨부파일 제출 - 5월 30일 목요일까지
* 참고자료 : 영어임용고시 합격수기 및 학습방향, 학생상담예시, 교과서 교사 사이트 안내 * 수업 참관 및 실습 자료 : 지도안 자료 및 예시, 지도교사 공개수업, 양식, 수업과제 등
<교수요목 피드백 및 지도안 제출> 교수요목 미리 작성하여 교사 피드백 후 지도안 작성 지도안은 수업 시 제출. 수업 후 지도교사 수업 피드백 <구글클래스룸 메뉴> <과제 예시> |
대학 동기들 6명과 오래간만에 만났다. 모두 영어교사를 하고 있고, 그중 한 명은 장학사가 되어 교감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동기에게 “너 늙었다”라는 말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걸 보니 서로 편한 사이임에 틀림없었다. 서로 달라진 외모보다는 거의 변함이 없는 목소리에 기대어 예전의 기억과 소통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난 여럿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모두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애환이 있었다. 서로의 힘든 일들을 위로해 주면서도 혼자서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 듯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거의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서로 어디 사는지 물어보는데 위치만 다를 뿐 모두가 소위 1급 이상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나와는 달리 당연히 모두 운전을 하고 있었다. 동기가 내게 사는 곳을 물어서 그냥 위치만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근처 아파트냐고 되물어서 빌라라고 얘기했다. 동기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그런 류의 대화에도 어차피 낄 수 없었다. 나와는 살아가는 생활 수준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3시간 반 넘게 주로 학교생활 위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생활도 내가 겪는 세상과는 다소 달라 보였다. 나도 교사로서 힘든 일을 겪고 굴곡을 겪어왔지만 상대적으로 덜 힘든 학교에 근무했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환경의 차이인 것인지, 그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인 것인지 구별이 쉽지 않았다. 모두들 나이가 들면서 삶의 무게를 더 느끼고 있었다. 사립학교 교사와, 장학사인 친구를 제외하고는 중고등학교 순환근무를 명시한 대구시 인사규정 상, 고등학교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가 첫 중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연이 주된 화제였다.
올해 처음으로 중학교에 간 동기가 내게 강연 다니면서 다른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님들한테만 도움을 주지 말고 중학교 와서 헤매고 있는 동기들에게 도움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내 강연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닌 듯했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서로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난 그저 웃으면서 침묵을 지켰다.
대학생 때도 난 과방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시간낭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걸 친목이라고 하고, 그 낭비한 시간만큼 더 친해진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이유로 친목에 거리를 두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두 명이 모여서 서로의 성장과 고민 해결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수의 만남이 아니라면, 모임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는 평소 생각만 확인했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이 나이 되어서도 서로 이름을 부르며 대학교 때의 느낌을 되살리는 그 편안함이 좋았지만, 내게는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몸이 너무 지쳤고, 다음날까지도 그 여파는 이어졌다.
동기들이 고생하는 이야기도 내겐 너무 우울한 이야기로만 들렸다. 우리는 이젠 더 이상 젊지도 않고, 도전해서 뭔가를 성취하기에는 무력한 상태라는 느낌도 들고, 더 나빠질 것만 같은 앞으로의 현실 세상이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동기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 몰입하지 않으려 오히려 애쓰면서 마음이 더 힘들었다.
학교에서도 아직 나의 역할이 있고, 나를 믿고 기대는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많고,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다른 학교 학생들, 대학생들까지 만나서 전해야 할 강의에 몰입하고 있어서인지, 그 대화에 공감하는 것 자체가 타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그런 불안하고 힘들고 무력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승진한 동기와 경제적으로 나보다는 더 성공한 동기들 사이에서, 아무도 나의 상황과 비교하며 내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동안 내가 간직해왔던 삶의 가치, 성공의 기준 등이 흔들리지 않게 꼭 붙들어야만 했다. 부디 그게 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허망한 애씀이 아니길 바라면서. 내게는 승진도, 경제적인 여유도 우선순위가 아니었는데 동기들과 스스로 비교하면서 후회와 더불어 나의 그동안의 선택과 삶의 방향이 부정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예전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다 포용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공감하고 위로를 하기에는 내 역량이, 내 체력과 건강의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에도 힘들었을 것이다.
평소 내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만으로도 충분히 그 한계를 넘나들고 있으니까...
얼마 전 동학년을 하는 누님 쌤이 내게 수업과 담임역할 외에도 다른 쌤들보다 4개의 삶을 더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ㅠㅠ 학년부장, 학생멘토 및 학습코치, 외부강의 강사, 블로거... 학년부장의 무게와 부담감을 제외하고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스트레스 없이 체력만 조절하면 되는 일이라서, 염려와는 달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듯하지만...
그러나 내가 가치를 두는 최우선순위 외의 일들이 사소해 보여도 오히려 내게 스트레스가 되거나 나를 더 힘겹게 하기도 한다. 그전에는 감당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4월쯤 잠정적으로 예정했던 몇몇 제자들과 만남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5, 6월은 더 바빠져야 할 것 같아서 계속 미뤄두게 될 것 같다. 그 미뤄둠조차 내게 짐이 되고 있다.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 없다면, 감당할 수 없다면... 일단 우선순위의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핑계만 대면서.
평소에도 사교적이지도 않지만, 그 외의 만남 등에 대해 동면 같은 삶을 다짐하다가...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시간의 두 종류인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언급했던 설교(2024.4.28.)가 내 고민과 맞닿았다.
나무위키 정의에 따르면 크로노스가 실제로 흘러가는 절대적 시간을 뜻한다면, 카이로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한순간" 혹은 인간이 평생 동안 체험하는 주관적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즉 카이로스는 의미가 부여되는 시간을 말한다.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과 인식을 말하므로 그 의미 부여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렸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준비 안 된 학생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학생들을 학교에서 관찰하다 보면 이 학생들이 오늘 학교에 왜 왔는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야자 마치는 순간 단 1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고, 이미 떠날 준비를 다 갖춰놓은 학생들이 마구 뛰어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이 학생들은 오늘 “집에 가기 위해” 학교를 온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매 순간의 목적의식을 외치고 다닌다. 매 순간 목적을 결심하려는 의지 없이는 시간은 세월처럼 그냥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이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1989)>라는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 오늘을 잡아라. 너희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키팅 선생님이 언급한 “카르페 디엠”의 원래 의미는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17세기 영국의 서정시에서 “카르페 디엠”은 현재의 쾌락을 즐기라고 권유하며, 인생이 무상하고 세월이 빠르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의 정신과도 통한다. (1962년 발표된 이 노래는 전후 복구나 재건 등의 현실 때문에 놀고 싶어도 놀 수 없었던 시대의 애환이 담겨 있었을 거라고 한다 - 나무위키)
이 문구는 고대 로마의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카르페 디엠” 다음에 이어지는 시구가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쾌락이든 의미 있는 일이든 현재를 담보로 미래만 바라볼 것이 아니니 현재의 가치를 더 두라는 의미로 볼 수는 있다.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은 지금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상황처럼 미국 명문사립고등학교의 입시 스트레스로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거다.
미래를 위한 투자처럼 현재를 쓰는 것도 이 시간의 의미 부여이긴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행복과 의미를 부여하는 그만의 해석이 포함되었던 셈이다. 오늘의 즐거움을 망설이거나 오늘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크로노스인 시간을 카이로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면... 지식 하나 더 얹어주는 것보다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진정한 교육활동일 것이다.
특히 요즈음 나는 시간과 체력이 제한되어 있다고 느낄수록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에 대한 비장한 사명감이 들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이 주어져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체력이 되지 않는다면 충전이라도 해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휴식의 의미라도 부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 사치라고 느껴졌던 젊은 날과 다른 현실 인식이 드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나만의 카이로스를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니... |
오늘 공사 시험을 준비하는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 1차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을 때 이렇게 격려해 주었었다. 1차 면접 통과하고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고 할 때는 이렇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최종 탈락을 했다는 메시지를 오늘 받고 가슴이 무너졌다. 제자가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는 여기까지 온 것도 작은 성취로 두라고 주신 기회 같고, 예정하신 자리라면 갈 거라고 내가 해준 이야기를 매일 보면서 마지막까지 힘냈다고 태연한 듯 메시지를 보냈다ㅠ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 제자가 탈락 사실을 접하고도 그럴 수 있다고 참았는데, 내 메시지를 보고 아침부터 우는 사람이 되었다고 답변이 왔다ㅠㅠ 눈물과 슬픔도 할당된 총량이 있다. 그래서 울어야 할 때는, 울고 싶을 때는 그냥 울어야 한다. 미래에 흘릴 눈물을 남겨놓지 않도록...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은 채로 겉 부분만 멀쩡한 척 임시방편으로 봉합해 둔 것일 수도 있으니... 교사로 제자들의 기쁜 소식만 접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내 삶의 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미 제자들의 아픔을 함께하며 응원하는 운명을 선택했다. 아픔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아픔을 함께해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인간의 고통을 면제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으로 아픔을 함께해 주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아픔은 치유와 회복을 전제로 한다. 내버려두고 포기하면 오히려 무감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의 아픔 가운데 난 오히려 더 큰 희망을 보았다. 그 희망 가득한 나의 응원의 마음이 가닿기를... 그런데 정작 제자에게 전할 정말 중요한 말을 빼먹었다. 블로그 글을 볼지도 모르는 제자에게 한 마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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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은 한 번 들으면 여간해서는 잊히지 않는다. May Day. 일명 노동절. 누군가에게는 휴일이지만 학교에서는 중간고사 날짜로 가장 사랑받는 날이라서, 학창 시절에는 늘 열공하는 생일이었다ㅋㅋ 2024년 생일을 맞았다. 70년대부터 시작된 내 삶에서 2024년은 어린 시절에는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은 공상과학 스토리의 상상 속 연도였다. 그날을 이제 막 과거로 떠나보냈다.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수명의 길이만 의미가 있고 감사할 제목인 건 아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내게 주어졌던 선물 같은 만남의 축복을 생각하니 뭐든 당연한 게 없을 지경이다 흡사 기적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일상에 잠식되어 축복의 분량을 자주 객관화하지 못했을 뿐. 어제 수업하는데 어떤 학생이 자기 생일이라고 내게 외치길래 나도 생일이라면서 가볍게 생일빵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작정이라도 한 듯 풀파워로 내게 생일빵을 시연했다. 그 수업 이후 많은 학생들과 몇몇 선생님들이 내게 생일축하를 해주기 시작했다. 소문은 그렇게 퍼지고 있었다. 작정하고 낸 소문은 아니지만... 덕분에 뜻밖의 생일축하를 많이 받았다. 학생들에게 생일의 의미는 정말 엄청나다. 본인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찾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주인공이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관계 속에서 확인하는 의식과도 같다. 부디 생일에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에는 반 학생들 생일선물까지 챙겨준 적도 있었는데... 학반에서 하는 생축 이벤트라도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건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침에 아내의 미역국을 먹고 출근했는데 학교에서도 내 생일을 알았는지 점심 급식도 미역국이었다.ㅋㅋㅋ 가족톡에 아내가 오늘 무슨 날인 줄 아냐고 메시지를 남기자... 둘째 딸이 자기 자신이 선물이라고 답했다. 퇴근해서 집문을 여는데 불 켜진 거실에서 서울에 있어야 할 둘째 딸이 선물처럼 튀어나왔다. 늘 집에서 생활하며 일상을 공유했던 것처럼... 한 달도 더 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진짜 본인이 선물임을 증명해 주었고 난 감격했고 감동했다. 더구나 딸은 댄스동아리, 연합동아리 안무 감독, 댄스학원 수강 등 학업 외에도 벌여놓은 일이 많아 주말에도 집에 내려올 형편이 안된다고 하여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만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 방문은 너무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였다ㅠㅠ 저녁 식사 후 딸은 본인이 겪었던 속상하고 힘겨운 일을 눈물로 얘기했다. 비판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냥 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위로했다. 딸은 다음 날 수업 때문에 만 하루도 머물지 못하는데도 힐링을 위해 왔다고 했다. 아빠 생축이 목적이 아니었던 거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생축하러 온 김에 겸사겸사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의 존재감과 집안의 포근함에, 아빠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해서 먼 길을 마다않고 집을 찾은 딸이 그 모습 그대로 내게 선물이었다. 아빠에게 기대며 보여준 신뢰의 모습도, 대학생이 되니 더 감동이기도 했다.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 나도 마음이 힘들고 안타까웠지만 변함없는 믿음과 응원의 진심을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생축만으로 먼 길을 짧은 일정으로 왔다 갔으면 반갑고 기쁜 마음 끝에 미안한 마음이 컸을 텐데, 내가 위로와 힐링을 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냥 모두가 생일에는 뭘 해도 기쁜 일들만 가득하면 좋겠다. 내게도 그런 넘치는 행복의 날이었다. 생일이 다 끝나기 전에 20년 넘는 인연의 제자 두 명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축하인사를 각각 전해왔다. 매년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이벤트를 해주기도 하는 이 제자들의 한결같음이, 20년이 넘도록 개근하듯 매년 일상처럼 반복되어도 늘 놀라움과 신기함과 감동의 감사 제목이다. 마치 쌤이 태어나서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는 내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인 것만 같아서 너무 행복했다. |